윤대중/민족학교 사무국장 (중앙일보 8-6-2010)
지난 7월 29일, 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 4시의 찬 바람을 맞으며 다저스 구장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다른 550 여명의 이민자 권익 옹호 단체, 지역 주민, 그리고 노조 관계자들과 함께 아리조나 주의 반 이민법 S.B. 1070을 규탄하기 위해 아리조나 주 피닉스 주 청사로 출발 하기로 했던 것이다.
버스 타기 전 주차장에서 나눠주는 따뜻한 커피를 입에 대는 순간 한 라티나 여성 분이 손짓을 하고 “꼬레아노” 라고 부르며 반갑게 다가왔다. 알고 보니 지난5월 29일 민족학교도 참가했던, 피닉스 주 청사 앞에서 열린 SB 1070 반대 시위 집회 장소에서 만났던 분이다.
이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대략 간추려 보면, 본인은 LA 주민이고 당시 연대 차원에서 아리조나 주 청사 시위에 참석하셨다. 그 날은 악명 높은 아리조나 주의 S.B. 1070 법에 주지사가 서명을 한 바로 다음 날 이었다. 아리조나 주 청사 앞에서 사흘 넘게 단식을 하며 법안 저지를 위해 모여든 지역 주민 및 학생들의 눈물에 젖은 눈동자와 끝까지 법 시행 중단을 위해 노력 하겠다던 주민들의 목청 터지는 연설이 가슴에 깊이 새겨 지던 순간 이었다.
반 이민법의 통과라는 충격 적이고, 침울 했던 상황 속에서 그 자리에 있던 수 백 여명의 참가자들은 생전 처음 들어 보는 풍물 소리와 오색이 만발한 색깔의 농기가 입장 하는 것을 보며 “와” 하고 함성을 지르며 우리 풍물패 주변으로 몰려 들었다. 아리조나 주에서는 자주 보지도 못하던 코리안 아메리칸 수 십 여명이 농기를 들고 풍물을 치며 시위장으로 들어 오는 광경을 본 지역 주민들-대부분은 라틴계 이민자들-은 큰 함성과 함께 풍물패의 힘찬 장단에 맞추어 박수를 쳤고, 풍물패를 따라 오며 침울 했던 분위기가 180도 바뀌어져 열정의 각오로 변했다. 이런 이야기를 마치신 아주머니는 나에게 “그 때 힘찬 풍물을 치며 대중을 향해 행진을 하던 코리안 아메리칸의 인상은 평생 잊을 수 없다”며 이번에도 풍물을 꼭 쳐 달라고 부탁을 했다.
잠시 동안 몇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며 가슴이 복 받쳐 올랐다. 라티노 이민자 입장에서 얼마나 외롭고, 힘들고, 충격적이었으면 같은 이민자인 코리안 아메리칸이 이런 반이민법에 반대 하는 것을 보며 고맙다는 말을 하게 되었을까? 만일 S.B. 1070이 시행 되면 라티노 이민자는 물론 이고, 얼굴이 누런 동양계 이민자들도 백인 경찰의 눈으로 보았을 때는 똑같이 잠재적 서류미비자로 보여 이민 신분 검문의 대상이 된다. 시민권자 코리안 아메리칸이라도 경찰이 합법 이민 신분증을 요구 했을 때 그 자리에서 바로 보여 주지 못하면 똑같이 철창 신세를 질 처지였을 것이 뻔한데 말이다.
그리고 S.B. 1070이 통과 된 2010년 4월 이후부터 꾸준히 세번 이나 법안 반대를 위해 6시간 이상 운전해서 아리조나 주 피닉스 주 청사에 달려간 전국의 이민자 지역 사회, 양심적인 미국인, 특히 우리 남가주 재미 동포들에게 고맙고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법안이 통과 된 바로 다음 날 버스를 대절해 아리조나로 향하던 날은 일요일 날 이었다. 많은 교인 분들도 함께 참석해 교회를 못 가게 막은 꼴이 된 것 같아 가는 도중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버스 안에서 각자 이번 집회의 참가 동기에 대해 서로 나누는 순서가 있었다. 그 중 한 연장자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며 한 번도 주일 예배를 빠진 적이 없었다. 이번 아리조나 주 반이민법을 반대 집회가 주일날 열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주님께 기도로 여쭈어 보았다: 주님께서는 이럴 때 어떻게 하셨을까요? 주님의 기도 응답을 받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버스를 타고 아리조나 주로 간다”
말씀을 마치시자 이야기를 듣던 아이들부터 연세가 많으신 연장자들까지 모두가 숙연 해 지고 “비록 우리가 세대는 다르고, 사용하는 언어도 다르지만 정의와 인권을 바라는 마음은 모두가 다 똑 같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다 연대 차원에서 아리조나 주의 이민자들과 하나가 되었구나” 라는 가르침을 얻으며 많은 힘을 얻었다.
S.B. 1070을 반대하는 많은 이민자들의 반대 함성이 전국에서 울려 펴졌고, 법 실행 예정일 7월 29일을 하루 앞두고 연방 법원은 S.B. 1070의 주요 내용 실행을 임시 중단하는 판결을 발표 했다. 당분간 경찰이 이민자들의 이민 신분을 묻지 않을 것이고, 많은 이민자들이 목숨 보다 소중하게 챙기는 시민권 증서를 상시 소지하지 않아도 되게 된 것이다.
새벽 4시에 아리조나 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 타며 마음이 훨씬 홀 가분 했다. 그리고 많은 얼굴이 떠 올랐다. 새벽 어두움을 밝히며 우리 풍물패에 감사 해 했던 라티나 아주머님, 바로 몇 달 전 눈물을 흘리며 우리 풍물패를 환영 해 주었던 피닉스 시 주민들 그리고 기도로 S.B. 1070 중단을 호소하셨던 우리 연장자 어르신. 바로 이런 힘들이 모여 S.B. 1070시행 임시 중단의 성과를 얻었다. 그리고 이런 힘들이 더 많이 모여 영구적 중단,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포괄적 이민 개혁이 곧 실현 될 줄 믿는다. 내 마음은 감사함으로 꽉 채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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