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라 조 교수/UCLA-민족학교 보건 상담소 협력 프로그램 담당
(중앙일보 5-11-09)
한인 사회는 의료 보건 이슈에 있어서 큰 도전에 직면 해 있다. 타 민족보다 의료 보험 가입 율이 훨씬 낮고 실제로 의료 서비스를 받는 비율 또한 낮다는 것이다. 미국의 의료제도는 제대로 된 재정 지원이나 정부 관리가 전무한 것이나 다름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수 많은 무보험자들은 예방 검진을 못 받고 있으며, 가벼운 치료마저 기피하고 있어 장기적으로 크고 작은 질병이 쌓여서 결국 응급 조치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나 심지어 죽음에까지 이르고 있다.
더 나은 삶을 찾아 미국으로 이주 한 이민자들 중 시민권자가 아닌 사람들의 상황은 특별히 불행 하다고 할 수 있다. 똑같이 세금을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민 신분 상 시민권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공공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 의료보험 혜택이 있다 하더라도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 한국 행 비행기를 타는 것은 사실 현실적인 대안이 아니다. 연장자나 몸이 약한 환자의 경우 장거리 여행은 큰 부담이 되며, 만성질병 같은 경우 한번 병원에 갔다 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기적인 검진을 통해 치료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 많은 지역 단체들은 무료 건강 검진 행사를 열거나 행사에서 봉사 함으로서 이러한 상황을 조금이나마 완화 하려고 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은 물론 필요한 것이며 당면한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많은 수의 무보험자 한인들은 무료 검진 행사에서만 기초적인 검진만을 받으면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정밀 검진에 대해 알지 못하거나 검사 비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무료 행사를 통해 받을 수 있는 일회성 검진에만 의존하는 것은 장기적인 차원에서 결코 권장할 만한 것이 아니다. 나는 의료계에 종사하면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걱정과 불안 속에 살아가는 이들을 너무나 많이 보아 왔다. 모든 방법을 동원 해 치료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보고 대기실에서 몇 시간씩이나 기다린 후에도 병원 문이 자신의 눈 앞에서 매정하게 닫혀버리는 것을 경험 한 이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며 비통한 표정으로 눈물을 떨군 적도 있다. 예방 검진만 제 때에 받았더라면 상황이 악화 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던 수 많은 환자들의 사례 또한 직접 목격 하기도 했다.
우리 한인들은 이민의 역사가 비교적 짧은 민족이다. 70년대에 7만 명이 겨우 못 되던 한인들이 이제는 백만을 넘어 미국의 경제와 문화적 다양성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자리잡았다.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결코 정부가 알아서 의료 제도를 이민자들의 필요에 맞추어 주지 않는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것이 이치이다. 애초에 모든 이들에 대한 혜택 제공을 염두에 두지 않은 상태에서 만들어진 옛 의료제도를 조금씩 고치는 것 보다, 지금 급속도로 진행 되는 새 의료제도의 대대적 개혁 논의에 참여 해 한인 사회가 필요한 정책을 주장하는 것이 순리이다. 우리는 사회를 우리 스스로를 위해서 변화 시키고, 동시에 후대를 위해서 변화시킬 책임이 있다.
우리의 수가 너무 적어서 어떤 목소리를 내던 간에 큰 변화를 보기는 어렵다고 단정 할 이유는 없다. 미 법무장관 로버트 F 케네디는 1966년 당시 인종분리정책하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인종차별 철폐를 위해 활동하는 대학생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가 어떠한 이상(理想)을 위해서, 또는 다른 이들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할 때 우리는 작은 희망의 물결을 서로간에 보내는 것이다. 그러한 물결들이 수백 수만 개가 모여서 그 어떤 억압적인 사회 구조라도 무너뜨릴 수 있는 큰 파도가 된다" 라는 내용의 연설로 용기를 북돋아 준 바 있다. 우리의 목소리를 내자. 이 나라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자.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교계, 커뮤니티, 재계 등이 뜻을 하나로 모아 한인들의 요구 사항이 반영 되는 의료 개혁을 실현시키자. 의료 문제 근본 해결의 적기는 바로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