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발의안에 대한 유권자의 심판

1337834876_504a0a6634_o 민족학교 김용호 시민참여 코디

(중앙일보 8-13-08)

2008 년은 새해 벽두부터 대통령 선거로 시끄러웠던 한 해가 될 전망이다. 유력주자 클린턴과 줄리아니를 제치고 신인들이 등장했으며, 결국 미국 역사상 최초로 백인이 아닌 대통령이 될 수 도 있는 오바마와 공화당 소장파인 메케인이 11월 본선까지 진출했다. 한인들도 소수민족 및 이민자의 목소리를 낼 때는 이 때 라며 선거 열기에 동참 해 투표율이 높아졌다. 대선의 시끌시끌한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관심이 떨어지는 분야가 있으니, 바로 주민발의안이다.

대통령 선거가 왜 중요할까? 대통령이 국가의 수반, 정부를 이끄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부는 우리 커뮤니티에 영향을 끼치는 경제, 외교, 복지 등 사회 모든 분야에서 정책을 만든다. 결과적으로 선거가 중요한 이유는, 선거가 정책의 방향을 결정해서 우리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보나 정당이 내세우는 공약은 100% 다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선거용으로 급조한 공약도 있고, 실제로 집권 해 보니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는 정책이 있을 수도 있다.

반면, 주민발의안에 담긴 내용은 통과 시 바로 법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지켜지지 않을 수 가 없다. 발의안을 후보로 치면, 한 말은 항상 지키는 정직한 정치인인 셈이다. 이런 강점을 가진 발의안이 왜 정치인과 비교해 인기가 떨어지는 것일까? 좋은 발의안은 거의 없고, 선거 때마다 나오는 발의안이 그저 이민자들을 감옥에 잡아 넣고, 렌트비 보호를 없애고, 결혼 할 권리를 제한하고, 정부가 빚을 져서까지 건설프로젝트를 강행하게 만드는 등, 커뮤니티의 권익에 위배되는 내용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가끔씩 좋은 내용이 나올 때도 있지만, 그러면 또 아슬아슬하게 통과에 실패하고 마는 것이 태반이다.

발의안(Initiative) 제도는 국민투표(Referendum), 국민소환제(Recall) 와 함께 미국 직접민주주의 체계의 3대 제도이다. 발의안 제도는 미국 건국시에는 시행되지 않다가 20세기 초 당시 "진보주의"이라고 불렸던 정치개혁파에 의해 시행 되었다. 테디 루즈벨트 및 윌슨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이들은 의회 등 정부 기구가 기업들이 자신의 이익만을 지키려 로비를 통해 싸우는 각축장으로 타락해버렸다고 보고, 기업의 입김을 최대한 줄이며 동시에 시민들이 정부를 견제 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 했다. 정치개혁파의 이러한 "진보주의"는 오늘날의 진보 대 보수 구도와는 다른 것으로, 예를 들어 2002년 통과된 메케인-파인골드 선거캠페인 자금개혁법도 이러한 정치개혁파의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주민발의안 제도는 의회 절차를 건너뛰고 주민들이 직접 법을 입법하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수십명의 의원들을 매수하면 결판이 나는 의회와는 달리, 수백 수천만의 주민들이 한표를 행사 해 통과되는 발의안에는 기업이 영향력을 행사 할 여지가 적다고 판단 한 것이다. 이 발의안 제도는 특히 서부 해안 지역에서 폭넓게 도입되어, 캘리포니아에서는 첫 발의안이 도입 된 1911년 이후로 1,174개가 넘는 발의안들이 투표에 붙여졌다. 발의안이 투표용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약 60만개에 달하는 지지서명을 받아야 하며, 통과되려면 50% 이상의 찬성표를 받아야 하는 등 엄격한 선발기준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초기의 취지와는 달리 일반 시민들이 발의하는 내용은 이러한 기준에 미달 해 탈락하는 반면, 기업들은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 해 돈을 주면서 지지서명을 모으고 테레비전 광고를 통해 찬성표를 확보하여 오늘날의 발의안들은 기업 및 보수세력들의 잔치장이 되어 버렸다. 기업을 견제하기 위한 장치가 기업의 이익추구 도구로 전락 한 것이다.

이번 11월 선거에는 12개의 주 주민발의안이 유권자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각 발의안의 내용은 아동병원, 환경에서부터 지역구재조정, 동성애자 권리 관련 등 그 범위가 다양하다. 비록 나의 삶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더라도, 내용이 너무 복잡하더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커뮤니티와 사회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주민 발의안에 대해 관심과 내용을 알아 보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돈을 써서 법을 만들려는 사람들에게 유권자의 의식과 참여는 쉽게 무시할 수 없는 힘이란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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