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적 이민 개혁, 이민자 단속/구금 문제 해결 포함해야 한다

Hee Joo Yoon 윤희주/민족학교 프로그램 디렉터
(중앙일보 4-21-09)

“제 친구가 샌디에고에 일하러 갔다가 잡혀갔어요” 지난 2월, 민족학교에 다급한 목소리로 걸려온 전화내용이다. 자세한 내용을 들어보니, 세 아이의 아버지인 김철수(가명)씨는 2003년 큰 딸과 부인과 함께 미국에 온 이후 두 자녀를 더 얻었고, 영주권이 없는 상태로 현재는 이삿짐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성실한 가장인데, 그 날도 고객의 이삿짐을 샌디에고에 실어주고 오는 길에 검문을 받아 바로 구금시설로 향하게 된 것이다. 김철수씨는 타 주 운전면허증을 소지하고 있었음에도 이민 신분을 추궁 받아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가족과 헤어지게 된 것이다. 게다가 김철수씨가 구금된 곳은 애리조나였다.

이렇게 김철수씨와 같이 갑작스레 잡혀간 서류미비자들은 사실상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법적으로는 추방재판을 거치게 되어 있지만, 언제 재판을 받게 되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가족을 그리며 하루하루 버텨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재판 날짜를 기다리는 동안 병이 있어도 제대로 된 치료는 커녕 약조차 공급받지 못해 건강에 심각한 위험이 오기도 한다. 무분별한 마구잡이 식 단속으로 수감자가 넘쳐나 열악한 환경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나오고 싶은 생각 뿐이라고 한다. 때문에, 재판을 기다리느니 차라리 자진출국을 택하여 가족들과 제대로 인사조차 못하고 미국을 떠나는 사람들까지 있는 것이다. 자진출국은 선택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강요에 가깝다. 언어로 인한 고통은 이들에게 또 하나의 좌절을 안겨준다. 의례적이나마 읊어주는 수감자의 권리는 영어가 미숙한 이민자들에겐 또 다른 공포를 안겨줄 뿐이다.

밖에 있는 가족들에게도 수감된 이들 못지 않은 고통이 따른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하러 간 가족이 잡혀갔다는 사실 만으로도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을 텐데, 가족에게는 아무런 통보도 없이 이감시키기 일수여서 어느 기관에 수감되어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어느 날 가장을 잃어버린 가족들의 어려움은 말로 감히 표현이 되지 않을 것이다. 경제적 어려움은 물론이고, 생이별을 해야 할 지 모른다는 불안감, 추방을 대비한 나머지 가족들의 거취에 대한 고민들까지... 김철수씨와 같이 어린 아이들을 둔 부모인 경우, 갑자기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수감된 사람들 중에는 김철수씨와 같이 혼자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장도 있을 것이고, 몸이 아픈 부모를 혼자 돌보고 있는 자녀도 있을 것이고, 출산이 코 앞에 다가온 부인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예비 아빠도 있을 것이고, 어린 자녀를 유치원에 맡기고 일을 나온 싱글 맘도 있을 것이다.

개개인의 절박한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엉망진창인 이민법 만을 내세워 중죄인도 아닌 선량한 사람들을 형편없는 시설에 가두고 법에 명시되어 있는 권리마저 무시하며 이 나라에서 내쫓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일까? 영주권이 있느냐 없느냐가 인권을 보호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를 판정하는 기준이라고 한다면 차라리 이 나라엔 인권이 없다고 얘기하는 편이 낫다. 아무리 큰 죄를 지은 범죄자라 하더라도 그 인권에까지 수갑을 채우지 못하는 법이거늘, 어떻게 서류 한 장 없다는 이유 만으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조차 누리지 못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이 땅에서 태어나 부모의 보호 속에서 이 나라의 시민으로 자라나야 할 아이들이 이민법 집행보다 뒷전이라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준비도 없이 사랑하는 가족들과 헤어져 언제 재회하게 될지 모르는 불투명한 상황에 놓이게 된 김철수씨는 미국에 살고 있는 1천 2백만 서류미비자 중의 한 사람이다. 또한, 그는 이 땅에서 태어난 300만 명의 시민권자 자녀를 둔 부모 중의 한 명이다.

지금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과 민주당의 의석 우위로 이민 개혁에 대한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미국의 미래를 좌우할 포괄적인 이민 개혁은 서류미비자의 합법화만 다루어서는 안 된다. 공정한 재판 절차와 법 적용, 누구에게나 공평한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이민 개혁은 또 다른 음지를 양산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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