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보도용:
2007년 4월 27일
문의:
오수경 (267) 334. 5918, 영어
윤대중 (213) 434. 4267, 우리말
채지현 (646) 761. 6027, 스페인어
“함께 일구는 미국의 미래: 이민 개혁을 이루어 냅시다!”
아시아 태평양계 아메리칸 전국 집회
2007년 4월 30일 – 5월 1일, 워싱턴 디씨
의회에서 이민 개혁 법안이 논의되고 있는 중대한 시점인 지금, 전국 25개 주에서 모인 약 400명의 아시아 태평양계 아메리칸들이 워싱턴 디씨에서 전국집회를 갖는다. 이틀 동안 진행되는 이번 행사에서, 참가자들은 제기능을 하지 못하는 현행 이민 시스템의 개혁을 의회와 백악관에 요구할 것이다. 또한 5월 1일은 아시아 태평양계 아메리칸 문화유산의 달의 시작일뿐만 아니라 국제노동절이기도 하여 그 의미가 크다 하겠다.
행사 일정:
2007년 4월 30일
커뮤니티 토론회
시간: 오후 4:00시 – 오후 6:30시
장소: Chinese Community Church, 500 I Street, NW
내용: 문화 공연, 영상물 상영(“Sentenced Home,” “Whose Children Are These?”, “April 10, 2006”), 새 이민법이 아시아 태평양계 아메리칸 커뮤니티에 끼치는 영향에 관한 토론, 최근 상정 법안 브리핑.
2007년 5월 1일
기자 회견
시간: 오전 11:30시 – 오후 12시
장소:Taft Memorial Park, Constitution Avenue between New Jersey Avenue & First Avenue, NW
연사: Featuring Floyd Mori (Japanese American Citizen’s League), Michael Lin (Organization of Chinese Americans), 고용자 여사(콜로라도), 그 외 붕괴된 이민시스템 피해자.
사회: 이은숙(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
집회
시간: 오후 12시 – 오후 1시
장소: Taft Memorial Park, Constitution Avenue between New Jersey Avenue & First Avenue, NW
참가자: 아시아 태평양계 아메리칸 종교인, 마이크 혼다 Mike Honda 하원의원(Chair of the Congressional Asian Pacific American Caucus) 연설, 디팩 바가바 Deepak Bhargava (Center for Community Change), 정승진 (뉴욕 청년학교), 풍물패 및 각종 문화단체.
사회: 존 멜레그리토 Jon Melegrito (Asian Pacific American Labor Alliance, AFL-CIO), 베키 벨코어 Becky Belcore (시카고 한인교육문화마당집).
주최 단체:
Asian American Justice Center, Asian Pacific American Labor Alliance (APALA, AFL-CIO), Japanese American Citizens League, Korean American Resource & Cultural Center of Chicago, Korean Resource Center of Los Angeles, National Asian Pacific American Women’s Forum, National Coalition for Asian Pacific American Community Development, National Federation of Filipino American Associations, National Korean American Service & Education Consortium, Organization of Chinese Americans, South Asian American Leaders of Tomorrow, Southeast Asia Resource Action Center, YKASEC-Empowering the Korean American Community of New York
기사작성 추가자료: 아래의 내용은 현행 이민법 하에 고통을 겪고 있는 커뮤니티 성원들의 사례이며, 행사기간 이틀동안 이들을 인터뷰 할 수 있다.
현행 이민법으로 고통받고 있는 아시아 태평양계 아메리칸 커뮤니티 사례
캐니 윤 씨는 24세로 10대에 미국으로 이민왔으며 어렸을 때부터 예술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런데 18세가 되자 그녀의 꿈을 가로막는 불가항력적인 거대한 장애물에 직면하게 되었다. 바로 ‘신분 문제’였다. 캐니 윤 씨는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내가 서류미비자라는 점이다. 미국에 온 것은 내 의지가 아니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범죄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전국의 학생들은, 붕괴된 현행 이민법이 개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의견을 밝혔다.
매년 65,000명의 서류미비 고등학생들이 DREAM 법안의 혜택을 기다리며 졸업하고 있다. 캐니 윤 씨가 언제 혜택을 받을런지는 기약이 없다.
박송선 씨의 부인은 61세이고 그의 장모는 83세이다. 8년 전, 그는 한국에 혼자 계신 장모님을 초청하기 위해 가족초청 수속을 시작했으며, 지금까지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그동안 그의 부인은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병든 노모를 보살피고 있다. 아시아 태평양계 아메리칸은 심각한 가족초청 이민 적체에 시달리고 있으며, 현재 2백만명이 대기상태에 있다. 이에 박송선 씨는 “가족 재결합은 인간의 기본권이다”라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박송선 씨가 언제 장모님을 미국에 모실 수 있는지 기약이 없다.
써니 장 씨는 목사님의 부인이며, 자신이 속한 교회 청년부의 두 학생을 계기로 이번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이 두 학생은 13살과 16살로, 베벌리 힐즈의 한 고등학교에 서류미비자라는 이유로 입학을 거부당했다. 이에 써니 장 씨는 청소년들에게서 교육받을 권리를 박탈하는 학교에 대항하여, 로스 앤젤레스 민족학교와 Civil Liberties Union과 함께 정의 구현에 나섰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베벌리 힐즈 통합 교육구에서 두 학생의 입학을 허가하게 되었다. 현행 이민 시스템의 개혁 없이는, 많은 서류미비자들이 신분의 문제를 이유로 각 지역에서 기본적인 권리를 박탈당하게 될 것이다. 이민 시스템의 개혁이 언제 이루어 질런지는 기약이 없다.
문의:
오수경, 이민자 권익옹호 코디네이터,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 전화 323. 937. 3703 x 206 / soh [at] nakasec.org
스페인어 문의: 캐시 채, 646. 761. 6027 / kathychae [at] gmail.com
우리말 문의: 문유성, 773. 510. 0907 / youngsun [at] chicagokrcc.org
Keo Chea 씨는 어머니, 언니, 오빠(당시 4세)와 함께 1981년에 미국으로 이민 왔다. 가난한 동네에서 망명자로 미국에 산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18세 생일에는, 오빠가 다른 친구 4명과 어릴 때 저지른 범죄로 체포되었다. 또한 가족들이 의뢰한 변호사는 그녀의 오빠를 청소년이 아닌 성인으로 재판받게 하였다. 그래서 그녀의 오빠는 다른 친구들이 3년동안 캘리포니아 청소년 보호소에 있었던 것과 달리 감옥에 보내졌다.
그녀의 오빠는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다른 수감자들의 개인교사로 활동하여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을 다닐 수 있도록 장학금을 받았다. 그러나 오빠는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을 다닐 수는 없었다. 오빠는 감옥에서 풀려나자마자 이민국 관계자들에게 잡혀갔고 이후 3년 동안 Keo Chea 씨의 가족은 오빠가 추방될 것인지, 아니면 평생동안 구금되어 있을 것인지 알지도 못한채 살아가야 했다. 2004년 8월, 오빠는 23년 전 가족이 탈출했던 내전에 시달리는 캄보디아로 추방되었다.
Keo Chea 씨의 가족은 이민 당국으로부터 어떤 이민 신분에 관한 정보도 받지 못했다. 그녀의 오빠는 어릴 적 저지른 잘못에 대해 단 한번도 새롭게 시작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Keo 씨의 오빠에게는 이민개혁이 소용없는 것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그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는 수천명의 형제, 자매, 어머니, 아버지, 할아버지들에게 이민개혁은 간절한 희망이다. 이민자들이 적법한 재판 절차를 보장받는 그 날, Keo 씨 가족이 다시 만나는 그 날이 언제일지는 알 수 없다.
Caroline Vang 씨의 가족은 해체되기 일보직전의 위기에 놓여있다. 아버지 Guy 씨는 어릴 적 라오스에서 도망쳐, 프랑스의 망명자 캠프에 정착했다. 여기서 마침내 시민권을 취득하고 Genevieve 씨와 결혼하였다. 부부는 프랑스에서 2명의 아이를 낳았고, 미국에 살고 있는 Guy 씨의 형제, 자매들과 함께 살기 위해 Dearborn으로 이사를 갔다. 망명을 신청한 지 10년이 지난 후에, 이민국은 Guy씨가 망명자로 부적합하다고 통보하였다. 그동안에 Guy 씨 부부는 Dearborn에서 식당을 개업에 성공했고, 2명의 아이를 더 낳았다. 현재 Guy 씨의 사례를 항소심에 계류 중이다. Caroline 씨와 그 가족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얼마나 기다려야 가족 재결합을 달성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Many Uch 씨는 캄보디아의 시민 전쟁과 크메르 루즈Khmer Rouge 대학살로부터 도망쳐1984년에 미국으로 피난오게 되었다. Uch 씨가 8살 때, 그와 가족은 워싱턴 주 퓨젯 사운드 Puget Sound 에 있는 공공주택 촌에 정착하였다. 1994년, Uch 씨는 무장강도의 공범자 혐의로 감옥에서 40개월을 보냈으며, "감옥에서 나온 후,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며 자신의 죄를 뉘우쳤다. 그리고 그는 현재 커뮤니티 활동가로, 캄보디아 청소년을 위한little league team의 코치로도 활동하고 있다.
Uch 씨와 전국의 1,500명 캄보디안 아메리칸의 운명은 1996년을 기점으로 바뀌었다. 미국은 이민법을 강화하여, 비시민권자에 대한 “추방대상” 범죄 목록을 확대하였다. 문제는 이러한 추방대상이 1996년 이전에 범죄를 저지르고, 형량을 다 치뤘으며, 합법적으로 거주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들에 대한 구제방안이 없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항소심은 원천적으로 봉쇄되었다.
캄보디언들이 미국에 이주해 온 배경을 생각해 보았을 때, 시민권을 보유하고 있지 않을 뿐 미국에서 자라온 이들을 추방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조치이다. Uch 씨의 언급처럼 추방법은 “이중 처벌”이다. Uch 씨는 형량을 마치고 석방된 날, 이민 출입국 관리소에서 28개월을 더 구금된 채 지냈다(당시 캄보디아 정부가 추방된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 고등법원은 마침내Uch 씨를 비롯한 피해자들을 구제하도록 무분별한 구금이 위법임을 판결했다. 그러나 2002년, 미국이 캄보디아 정부와 송환 약정서에 서명하였고, 가족을 생이별하게 하고 미국에서 자라 온 청소년들의 삶을 뿌리채 흔드는 추방은 시작되었다.
문의 :
Doua Thor, Executive Director, Southeast Asia Resource Action Center
전화: 202.494.7008; 이메일: doua [at] searac.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