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mmy Choi Interview

최진환 (Jimmy Choi) tells of his intention of immigrating to the U.S. upon seeing the good brought by U.S. soldiers during the Korean War, and how the 1965 immigration reform allowed him to come to the U.S. as a skilled worker.



Script (English)

My name is Jimmy Choi. I arrived in the Los Angeles Airport on March 13, 1971.

As a child, I saw the Korean War break out. Thousands of U.S. soldiers came to Korea. I noticed that they carried quality goods. I also was learning English at school, so I started thinking that I should go to the U.S. to learn English; I wanted to go to the U.S.

But the government wouldn't let you out before serving in the military, so I finnished my studies, and served in the army, and a school friend came to tell me around 1965 or 66, that there was a new immigration law and they were looking for dentists.

He told me to go find this guy in Bando Hotel, who would give me detailed information. Turns out he was in charge of sending immigrants off to the U.S. So I filed my application, abd obtained my visa, and that's how I came to L.A. in 1971.

Q: What did you do once in the U.S.?

There were five of us: three children - one daughter, two sons and my wife. I started working as a Teaching Assistant, but it was hard to make ends meet. My college friends advised me to obtain a degree in a U.S. school.

So I entered the USC dentist school and in 1974, passed the dentist license exam. And so I started working as a dentist again.

It would be shameful to live just for myself. So I thought about what I could do for my people and I think people in the States don't know much about the Koreas and the same is true for the Koreas so maybe I can act like a cultural bridge between the U.S. and the Koreas. My dream is, health permitting, to do some more of such cultural understanding work.

대사 (한글)

(제 이름은) 최진환입니다. 1971년 3월 13일 LAX 에 도착했습니다.

내가 어릴 때 1950년대 한국 전쟁이 일어났는데 그때 미군들이 한국에 많이 몰려왔죠. 미군이 쓰는 모든 군수물자가 월등히 좋고, 또 학교에서는 영어를 공부도 하고 해서 미국에 가서 공부를 해야 겠다, 미국에 가고 싶다, 그런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는데,

병역을 끝마치지 아니하면 미국에 안 보내주는 것이 문교부의 정책이니깐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모든 공부를 다 끝마쳤을 떄 즈음 해서.. 그때가 1965, 6년 이었는데 그때 미국에서 온 후배가 미국에서 지금 치과 의사들을 이민을 받는다, 새로운 법이 생겼다, 라고 새로운 소식을 전해주어서 반도 호텔 어디 누구를 찾아가면 그 사람이 알선을 해줄 것이라 해요.

서울에 반도호텔이라고 했는데 찾아가 보니, 아니 그 사람이 미국으로 이민 갈 사람을 알선하는 잡을 가지고 나와있는 거에요. 그래서 애플리케이션을 써서 넣어놓았죠. 나중에 비자가 나오게 되서 오게 된것에요. 1971년 3월에 엘에이에 도착하게 된 것입니다.

Q: 미국에 오셔서 어떠한 일을 하셨고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셨나요?

그때 내가 아들 둘 딸 하나, 아이가 셋이고 와이프까지 다섯이 미국에 이민을 왔는데 한국에 치과의사로서 그 생활이 좀 어려웠어요. 풀타임 잡을 얻지 못하고 시간강사로만 하다 보니깐. 미국에 오니깐 다시 치과 대학에 들어가서 면허를 따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다라고 선배들이 말을 해요.

그래서 캘리포니아에 있는 USC 치과대학에 다시 들어가서 캘리포니아에서 실시하는 면허 시험을 합격을 한 것이 1974년입니다. 그래서 치과의사로 다시 일하게 되었죠.

여기서 살다가 보니까 내 혼자만 사는 것은 좀 마음에 부끄러워요. 그래서 조국을 위해서 할 일이 무엇인가, 그것을 생각해 보니깐… 미국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서 잘 모르고, 또 한국 사람들은 미국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도 있어요. 그래서 나는 미국과 한국 양쪽 나라를 어느 정도 알고 있으니깐 서로 다리 역할을 할 수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여기저기 돌아다녀 보고 내 나름대로 아는 것을 전부 교환을 하고 이해를 시켜드리면 좋겠다, 앞으로도 내 건강이 허락하면은 그런 일을 좀 많이 하고 싶다는 것이 내 꿈입니다.